읽을수록 더 풍성해지는

‘글’은 참 매력적이에요.

내뱉는 순간 흩어져 사라지는 ‘말’과는 달리, ‘글’은 시간이 지나도 그 형체가 온전히 남으니까요. 그래서 같은 글이라도 읽는 당시의 감정과 상황 등에 따라 그 내용이 매번 다르게 느껴지나 봐요. 특히 방대한 세계관이 담긴 철학책은 매번 읽을 때마다 새로운 생각과 그 깊이가 덧입혀져 읽는 재미를 주고는 하죠.

요즘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눈을 빌려 아리스토텔의 [니코마쿠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을 다시 읽고 있어요. 주석서(Commentary on Aristotle’s Nicomachean Ethics by St. Thomas Aquina) 중간중간 아퀴나스의 그리스도교 신앙적 관점과 그의 윤리적, 철학적 해석이 적절히 결합되어 있어 마치 누군가와 토론하듯 흥미롭게 책장을 넘기고 있답니다. (관념적인 요소를 자신의 신앙 안에서 해석하려는 모습이 보이기는 하지만, 원문 자체에 대한 해석은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기에 저처럼 종교인이 아닌 사람이 읽기에도 큰 거부감이 없어요. 단, 이전에 [니코마쿠스 윤리학] 원문을 읽어보신 분께만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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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ary on Aristotle’s Nicomachean Ethics by St. Thomas Aquinas

[니코마쿠스 윤리학]을 처음 접했던 건 한창 롤스의 ‘평등으로서의 정의’에 빠져살던 중학생 시절이었어요. 아무래도 사춘기였기에 사회체제나 제도 등 내 삶의 ‘이상향’을 찾는 데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래서인지 전체를 위하여 개인의 욕구에 한계를 두는 롤스의 학설이 당시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다만, 그 실현 가능성에 의구심을 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연결고리인 인간의 본성과 개인의 윤리에도 눈이 갈 수밖에요. 그때 추천받은 책이 바로 [니코마쿠스 윤리학]이었어요.

처음 읽었을 때는 제5권 ‘정의’ 분야에만 집중했던 것 같아요. 나머지 부분에는 딱히 관심이 없어 책장만 슬렁슬렁 넘겼죠 (웃음). 초독 당시 제 모든 관심은 ‘과연 정의는 절대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데에 쏠려있었거든요. 그래서 대학교에서 다시 [니코마쿠스 윤리학]을 읽게 되었을 때는 그야말로 이름만 알고 친하지는 않은 학우를 만나는 기분이었던 것 같아요. 그나마 제5권은 한 자씩 곱씹어 읽었던 보람이 있는지, 그 도덕적 세계관을 향해 전보다는 한 뼘 더 가까이 발 뻗는 기분이었지만요.

인간의 모든 행위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함이고, 이 행복은 개인의 의지와 활동을 통해 얻는 스스로 충족된 상태이다 – 이제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 메시지가 처음 [니코마쿠스 윤리학]을 접했던 당시에는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거로 기억해요. 아직 사람을 ‘선’과 ‘악’으로만 양분하던 시기였기에 공공의 정의와 선을 추구하는 이타적 활동이 근원적으로는 나 개인의 행복을 위한 본능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거든요. 후에 재독, 삼독하며 자아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특히 다시 읽으며 ‘행복은 우연(운)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가슴 깊이 와 닿더라고요. 우연이 삶에 일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곧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지는 않는다. 행복은 선을 추구하는 인간 스스로 노력과 활동을 통해 성취되는 것이고, 고로 고귀한 정신의 소유자는 운에 좌우되지 않고 영혼의 활동을 계속한다. 진정한 행복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이십 대 초반, 한창 ‘행복한 삶의 모습’에 대하여 고민하는 시기였기에 내 노력과 마음가짐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이 큰 힘으로 다가왔던 게 아닐까 싶어요. 지금도 그러하고요.

그리고 이제 다시 제5권 – 아퀴나스의 목소리로 매 한 장 넘기며 이전과는 또 다른 낯섦과 깨달음을 반복하고 있답니다. 이번에는 어떤 생각과 함께 마지막 장을 넘기게 될까요?

 

설레는 가슴을 안고 또 한 장을 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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