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기존에 누려왔던 것을 유지하려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나고 자란 배우자를 선호하고,
일평생 일군 부와 명예를 자식에게 물려주기도,
때때로 꿈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하기도 한다.
되돌아보면, 언제부턴가 내가 자발적으로 요리를 시작하게 된 이유 또한 이 습성 때문일 테다 – 내 평생 누려왔던 어머니표 밥상의 따뜻함,
이어가고 싶은 가족의 시간과 문화가 있기에.
기억 속 가장 어렸던 시절부터 나의 하루의 시작과 끝은 가족이 함께했다.
특히 아침은 늘 예외 없이 온 가족이 식탁 앞에 함께 모여 시작되었다.
공식 기상시각은 아침 여섯 시 반,
하지만 매일 같이 여섯 시면 이미 거실이나 서재에서 신문을 읽고 계시는 아버지 눈치에 어쩐지 그 나머지 삼십 분을 온전히 누리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비몽사몽 동생과 졸면서 15분 비디오를 보고, 꼼수 어린 셈으로 줄넘기를 한 뒤 아버지로부터 넘겨받은 신문을 한 장씩 넘기다 보면 곧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식사하세요.”
그 소리에 얼른 달려가면 언제나 식탁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찌개며 짭조름한 생선구이, 갓 무친 나물에 여러 종류의 김치, 맑은국, 달큼한 불고기 등 팔구 첩 밥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와 동생이 식탁에 수저를 준비하고 각자 먹을 만큼 밥을 덜면 곧 아버지께서 수저를 드시며 말씀하셨다,
“식사하자.”
식탁은 언제나 풍성했다.
어머니의 정성 곳곳에 묻어있는 찬거리에 갖은 화젯거리며 일정, 고민거리 등 각자의 이야기를 얹다 보면 식사 시간은 금세 길어졌다.
서른 해 가까운 세월,
이렇게 우리 함께 하는 아침이면 꼭 식탁에 둘러앉아 진솔한 마음을 꺼내고
때로는 이견에 목에 핏대 세우고 각자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며
점차 가족이기 이전에 가까운 친구가 되고
어느덧 삶을 함께 살아가는 애틋한 동료이자 서로에 대한 절대적 지지자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가족’이라는 단어에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그림은 다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집밥을 함께하는 모습이다. 물론 저녁 외식이나 주말여행 기억도 소중하지만, 어쩐지 가장 진한 기억은 지금도 늘 그 자리에 있는 소소한 일상일 테니.
그 일상을 지속하고팠다.
유학을 시작하고, 어느덧 홀로 가계를 꾸리게 되면서
평생 가족 품에서 누려왔던 당연한 나의 일상이 모두에게 당연하지 않음을 깨달았기에.
그래서 내 손으로, 조금 다른 모습으로나마 그 일상을 이어나가고 싶어서.
결국 내 손으로 후라이팬을 잡았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 한 끼만큼은 나 그 일상으로부터의 기쁨을 느끼고 싶어서.
지난 세월 당연하게 누려온 우리 가족의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하여
멀리서 조금 다른 모습으로나마 우리의 아침을 이어간다.
문을 열자마자 늘 그렇듯 코끝을 간지럽히던 어머니표 집밥의 따스함,
그 온기를 잃지않고픈 욕심에.
식탁 앞에서 활짝 웃고 있던 우리 가족,
그 행복을 떠올리고파.
처음에는 마냥 서툴렀던 칼질이 어느덧 익숙해졌다.
이 손으로 어머니표 밥상을 얼추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게 된 오늘,
이제는 이 시간이 나의 내일에도 이어질 수 있길 바라며 매 하루를 마무리한다.
역시,
인간에게는 기존에 누려왔던 것을 유지하려는 습성이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