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한구석에서 미세한 바이올린 선율이 들렸다.
“바이올린을 좋아하시나 봐요?”
질문하는 내게 그녀는 자신은 클래식에 젬병이라며, 이 곡은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의 OST 리스트에 있는 곡이라고 손사래 쳤다.
“지금 흘러나오는 곡이 마음에 드신다면 나중에 Vitali의 Chaconne라는 곡을 들어 보세요. 이 곡과 비슷한 분위기라서 좋아하실 것 같아요.”
그렇게 사무실을 나서는데 문득 그날이 떠올랐다.
사, 오 년쯤 지났을까,
난생처음 방문했던 전주, 그리고
그곳에서 새롭게 만난 비탈리 샤콘느.
무슨 생각이었는지, 어느 여름날 아침 갑자기 일탈을 쫓아 호텔을 박차고 나왔다.
그렇게 돌연 내가 향했던 곳은 전주였다.
마침 고향에 내려 와있었던 지인 덕에 당일치기 전주 탐방은 평화로웠다.
연꽃 가득 호수 옆 사찰식당, 그 야외 테이블에서 맛있게 식사 중이시던 수녀님들, 귓가 스치는 여름 바람에 나 가슴 설레었던 산길 드라이브, 아기자기한 수공예품이 가득했던 깊은 산 속 찻집, 그리고 전주의 명물 한옥마을까지 – 매 한 곳 소박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했다.
그리고 오후 세 시 남짓, 쉼터에 앉아 한옥마을의 명물 팥빙수 한 그릇을 나누어 먹으며 무심코 곁눈질한 쉼터 오른쪽의 작은 언덕 – 저기에서는 한옥마을이 한눈에 보이겠지.
가벼운 마음으로 올랐던 언덕 위에는 커다란 정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잠시 더위를 피할 요량에 텅 빈 마룻바닥에 철퍼덕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이런 곳에서 비탈리 샤콘느를 들으면 어떤 느낌일까?”
그는 오랜 세월 바이올린을 손에 잡았다고 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랬다.
십사 년,
꽤 긴 시간 그 특유의 다채로운 음색과 섬세한 떨림을 좋아했다.
결국 나는 피아노가 더 좋다며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바이올린을 놓았지만서도.
앞서 한옥마을로 향하던 길,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종착지는 비탈리의 샤콘느였다.
바흐의 샤콘느보다는 비탈리 샤콘느가,
특히 애절함이 두드러진 Sarah Chang의 연주보다는 특유의 격정적 감성이 덧입혀진 Heifetz 버전의 비탈리 샤콘느를 가장 좋아한다는 내 말에 그는 반색했다.
자신도 Heifetz가 연주하는 비탈리 샤콘느를 가장 좋아한다며.
그렇게 이야기가 이어졌다.
샤콘느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마룻바닥에 누워 그 샤콘느를 들었다.
애절한 음색과 섬세한 멜로디가 사방이 트인 정자를 둘러쌌다.
바람 소리에 뒤섞여 마치 자연이 연주하듯,
그래서 더 아름답고, 또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그사이 그는 내 손가방을 베개 삼아 잠들었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 나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보았다.
샤콘느의 잔향이 아직 가시지 않았기 때문일까,
조금 전까지 마냥 맑고 푸르던 하늘이 새삼 조금은 색바랜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 여유를,
그 아름다움을 눈에 담았다.
여전히 비탈리 샤콘느를 좋아한다.
전과 조금은 다른,
나만의 시간을 덧입히고서.
예전에는 엮인 이야기 없이 그저 오롯이 그 감성만을 즐긴 거라면,
이제는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생긴 걸 테다.
그리고 지금,
집 안 가득한 샤콘느의 멜로디에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오랜만에 떠올리는 그 시간의 아름다웠던 하늘이,
풀내음 뒤섞인 샤콘느의 그 전율 어린 감동이,
그리고 팔 년 전 이 곡을 마지막으로 내려놓았던 내 낡은 바이올린이 새삼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2018년 3월 3일,
샤콘느와 함께 이 밤 흘려보내며